오늘의 역사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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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307년 - 서진 혜제가 독살되고 서진 회제가 즉위하다.

871년 - 애쉬다운 전투: 웨섹스 왕국의 앨프레드 대왕이 북방의 데인족(Danes)을 격파하다.

935년 - 12월 12일(음력) 고려가 신라를 병합하다. (936년 양력 1월 8일)

1297년 - 모나코 독립.

1815년 - 뉴올리언스 전투가 끝나다.

1895년 - 홍범 14조 반포.

1918년 -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의회에서 제1차 대전 평화와 전후 세계에 대한 14개조를 발표하다.

1932년 - 이봉창 의사,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는 도쿄 사쿠라다몬 의거 발생.

이봉창 의거(李奉昌義擧), 또는 사쿠라다 문 사겠는 1932년 1월 8일 한인 애국 단원 이봉창이 쇼와 천황을 죽이고자 수류탄을 투척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건을 윤봉길 의거와 함께 독립운동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대역 사건으로 규정한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은 도쿄 교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인 히로히토 천황을 겨냥하여 사쿠라다몬 부근에서 수류탄 1개를 던졌다. 말이 다치고 마차가 손상되고 일본 고관 대작 두 명이 부상하였으나 히로히토는 다치지 않아 거사는 실패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체포 직후 그는 처음에는 김구가 누군지 모른다고 일관하다가 뒤에 김구의 존재를 시인하고 그의 지시를 받았음을 진술하였다.

그는 곧 도쿄의 경찰서에 형법 제73조 위반 혐의로 구금되었다가, 곧 도요타마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도요타마 형무소에 수감 상태에서 그는 1월 8일 경시청에서 재판을 받고, 6월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뒤,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를 받았다. 형무소에 수감 중 그는 불교 서적을 읽기도 했다.

1932년 9월 16일 도쿄 대법원은 사건에 대해 제1차 공판을 하고 1932년 9월 30일 오전 9시 350명의 경찰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이봉창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비밀 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고 1932년 10월 10일에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미혼으로 처자식은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32세였다.

그의 거사는 실패하였으나 그의 뒤를 이은 윤봉길은 1차 거사에 실패하고 2차 거사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는 기사회생하는데, 이봉창과 윤봉길의 잇단 거사로 침체기에 빠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임정에 대한 한인 교민단체의 지원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하게 된다.

광복 후 귀국한 김구는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다시 돌려받아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했다. 이들의 묘역을 가리켜 삼의사묘라고 한다. 효창공원 내에는 수류탄을 던지는 순간의 이봉창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도 세워져 있다. 김구는 그가 처형되던 그날 전체 단원에게 단식을 명하여 이봉창의 죽음을 추모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봉창의 폭탄 투척은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투쟁의 선봉"이었으며,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해 놓은 천황의 행차에 그것도 적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강인성과 한국민의 지속적인 저항성을 세계에 과시"한 데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되었다.


1959년 - 프랑스 제5공화정의 초대 대통령으로 샤를르 드골이 취임하다. 미셸 드프레가 수상이 되다.

1974년 -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하다.

긴급조치(緊急措置)는 1972년 개헌된 대한민국의 유신 헌법 53조에 규정되어 있던, 대통령의 권한으로 취할 수 있었던 특별조치를 말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이 조치를 발동함으로써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이는 역대 대한민국 헌법 가운데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위임했던 긴급권으로,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제1호를 시작으로 총 9차례 공포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신군부(전두환 정권)의 주도로 1980년 10월 27일 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1977년에 재판받은 긴급조치 9호 위반 피고인 118명 가운데 91명, 1978년에는 189명 가운데 153명이 1년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받았지만 1976년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재판부(재판장: 이영구, 배석 조호은, 민형기)는 후진국일수록 1인 독재 정권이라고 말한 고등학교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2개월 뒤 전주지방법원으로 전보되어 다음 달 사임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1월 31일에 박정희 정권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589개의 사건 판결문 1412개를 분석하여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와 청와대에 제출하면서 윤관, 최종영, 김용철, 민복기 등 전직 대법원장과 함께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이공현, 민형기 헌법재판관과 양승태, 김황식, 박일환, 이홍훈 대법관과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손기식 사법연수원장, 권혁남 부산 고등법원장, 오세빈 대전고등법원장, 김진기 대구 고등법원장, 이호원 서울 가정법원장 등 고위법관 등이 포함된 당시 재판에 관여한 판사는 총 492명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101명이 지방법원장급 이상의 직위까지 올라갔다.

긴급조치 1호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⑦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1989년 - 일본의 천황 아키히토가 즉위하다.

1992년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되다.

수요집회는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이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다.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는 연중 집회 참가 인원을 5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1992년 1월에 시작된 이래 500회가 된 2002년 3월,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이 기록은 매주 경신되고 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으며 그후로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다. 수요시위는 정대협이 주최하고,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학생들, 풀뿌리 모임, 평화단체, 종교계 등 시민들이 시위를 기획하여 이끌었는데, 일본에서 방문한 평화활동가를 포함하여 외국인들의 참여도 많았다.

  •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 '위안부' 진상 규명 
  • 일본 국회의 사죄 
  • 법적 배상 
  • 역사교과서 기록 
  • 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 책임자 처벌

수요시위는 위의 조건들을 요구하면서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공휴일을 제외하고 이루어졌다. 다만,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지진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시위를 대신했다. 

2019년 8월 4일까지의 조사결과,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218명이 사망하였고 20명이 생존해 있었으며, 일본 정부는 수요시위나 정대협의 요구 사항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2011년 12월 14일,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여성본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 남북 여성들이 협력한다”라는 《남북 여성 공동결의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유엔을 통해 이미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됐다. 일본군 '위안부' 범죄와 관련한 증언 및 토론회 등을 통해 일본의 반인륜적 죄악과 우리 민족에게 가해 온 적대행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내고 이를 위한 투쟁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 해외 단체들과 폭넓게 연대하겠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북위원회 여성들은 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며,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 이행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시위가 있었다. 이 수요시위에는 길원옥, 김복동, 박옥선, 김순옥, 강일출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5명과 정대협 구성원 그리고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전 국무총리 한명숙, 한나라당 전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유정현·김성회, 민주당 최고위원정동영,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영선, 민주당 전 원내대표 원혜영,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최영희·이미경·전현희, 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 정봉주,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 이정희,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기완, 배우 김여진 등도 집회에 참석했다. 배우 권해효는 사회를 맡았다. 일본 정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제막식도 진행되었다. 1000회 수요시위를 기념해 대한민국 내 9개 지역 30개 도시, 세계 8개국 42개 도시 등에서 연대 행동도 이어졌다.

2013년 9월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엠네스티 사무실에서 정대협 관계자들과 프랑스 여성단체 대표들이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 여성단체 대표들은 여성단체들의 공동선언을 결정했고, 상·하원 결의 채택을 위한 의원과 정부 로비를 약속했다. 2013년 9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첫 수요시위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과 정대협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제 연대를 촉구했다. 프랑스 여성단체 관계자, 교민, 유학생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김복동의 증언에 이어 프랑스 여성단체 대표, 여행 중인 한국 여성, 유학생 등의 지지 발언이 있었다. 수요시위는 1992년 이래 일본, 미국, 중화민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열렸으나, 프랑스에서는 처음 개최된 것이었다. 정대협 관계자는 "유럽에서 정작 자유와 투쟁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에서는 활동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첫 수요집회를 열게 돼 고무적이다. 유럽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앞당기기 위한 여론을 확산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1995년 - 대한민국에서 개인정보보호법(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다.

대한민국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수집 · 유출 · 오용 · 남용으로부터 사생활의 비밀 등을 보호함으로써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법률이다.(시행 2013년 3월 23일, 법률 제11690호)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구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과 달리 공공기관뿐 아니라 법인, 단체, 개인 등으로 개인정보처리자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1996년 - 1996년 에어아프리카 충돌 사고 발생.

2005년 - 칠곡 시온글러브 화재가 발생하다.

2015년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남쪽 3.6km 해상에서 낙지통발어선 태승호가 침몰해서 2명이 구조되고 1명이 사망하였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푸르지오 하버뷰 아파트 내 킨젤스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네살배기 아이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

1994년 - 서울 지하철 6호선 착공.

2007년 - 서울에 위치한 롯데월드가 전면 개보수를 위해 휴장하다.

 

탄생

1037년 -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

1628년 - 프랑스의 원수 뤽상부르 공작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

1821년 - 남부동맹의 장군 제임스 롱스트리트.

1902년 - 소련의 정치인 게오르기 말렌코프.

1905년 - 대한민국의 동화작가 마해송.

1918년 - 대한민국의 화가 장욱진.

1920년 - 대한민국의 군인 박병권.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김영환.

1935년 - 미국의 록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에런 프레슬리 (1935년 1월 8일 ~ 1977년 8월 16일)는 미국의 가수, 작곡가, 음악가, 배우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적 표징으로 평가되는 그는, 이따금 "로큰롤의 제왕", 또는 단순히 "왕"으로 세칭 된다.

미시시피 주 투펄로 출신 프레슬리는 13살 때 가족과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했다. 1954년 이곳에서 음악 경력을 시작, 프로듀서 샘 필립스와 선 레코드에서 녹음을 진행한다.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 베이시스트 빌 블랙과 작반하여 로커빌리, 업템포, 백비트 추동의 컨트리 음악과 리듬 앤 블루스 융합을 선도했다. 1955년 매니저 톰 파커 대령의 주선으로 RCA 빅터와 계약을 성립한다. 1956년 1월 미국에서 첫 RCA 싱글 〈Heartbreak Hotel〉이 1위를 달성했다. 일련의 성공적인 전국 방송 출연 및 차트 정상 레코드를 통해 그는, 신흥 대중음악 로큰롤의 중진으로 부상했다. 인종 관계가 변모되던 당시 정력적인 노래 해석 및 성적 도발적인 공연 방식이 인종 장벽을 가로지르는 몹시 특이한 영향력의 배합과 더불어 그에게 공전의 유명세를 안겨주었으되, 동시에 그를 논란의 인물로 만들었다.

1956년 11월 자신의 첫 장편영화 러브 미 텐더를 제작했다. 1958년 군에 징병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가장 성공적인 저작들을 배출하며 음반 경력을 재발했다. 공연을 가끔 개최했으나, 파커의 지도에 따라 1960년대를 할리우드 영화 및 사운드트랙 음반 제작에 진력했다. 그 작품 대부분의 평가는 가혹했다. 이후 7년간의 라이브 공연 공백을 허물고, 찬평받은 컴백 스페셜 엘비스를 통해 무대로 복귀한다. 이는 일후 라스베이거스 전속 콘서트 및 고소득 순회공연으로 확장되었다. 1973년 단독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전 세계 콘서트 방송 알로하 프롬 하와이에 출연했다. 1977년 처방받은 마약에 중독되어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고 향년 42세에 그레이스랜드 사유지에서 사망했다.

프레슬리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다. 팝, 컨트리, 블루스, 복음성가 등 많은 장르에서 성공작을 생산한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음판을 판매한 단독 아티스트다. 그래미상을 세 번 수상했으며, 36세에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숱한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1942년 -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 일본의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1947년 - 영국의 음악가, 예술가 데이비드 보위.

1955년 - 대한민국의 권투인 김득구. / 대한민국의 배우 이두섭. /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사평론가 전원책.

1956년 - 대한민국의 성우 유해무.

1957년 - 대한민국의 성우 도용구.

1967년 - 미국의 가수, 음반 프로듀서 R. 켈리.
 
1971년 - 스위스의 축구 선수 파스칼 추베르뷜러.

197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유진.

1978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진희.

1979년 - 루마니아의 축구 선수 아드리안 무투. / 스웨덴의 축구 선수 한나 융베리.

1980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이정수.

1982년 - 미국의 배우 가비 호프먼.

1984년 - 북한의 국무위원장 김정은.

김정은(金正恩 1984년 1월 8일 - )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차츰 영향력이 커지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조선노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다. 보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조선로동당과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 령도자라 부른다. 본관은 전주.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스위스 유학 중 사용된 가명은 '박운'이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되었으며, 4월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2012년 7월 18일 원수로 진급했다.

2016년 5월 9일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책을 폐지하고 노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6년 6월 29일 최고 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87년 - 타이의 왕족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그리나.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이경. / 대한민국의 배우 김가은.

1990년 - 스웨덴의 축구 선수 로빈 올센.

1991년 - 대한민국의 체조 선수 신수지. / 대한민국의 가수 지민. (AOA)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 리영철. /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스테판 사비치.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아이언.

 

사망

307년 - 서진 혜제 사마충.
 
1324년 -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
 
1337년 - 이탈리아의 건축가, 화가 조토 디본도네.
 
1642년 -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1825년 - 미국의 발명가 엘리 휘트니.

1896년 -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

1949년 - 일본의 군인 우메즈 요시지로.

1976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총리 저우언라이.

1996년 - 프랑스의 제21대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1997년 -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2016년 -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백성희.

2017년 - 이란의 제5~6대 대통령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2018년 -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정치인 조지 맥스웰 리처즈.

2018년 - 온두라스의 축구선수 후안 카를로스 가르시아.

2018년 - 미국의 대학교수 조지 린드벡.

 

기념일

연방의 날(Commonwealth Day): 북마리아나 제도.

산파의 날: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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