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월 16일-소소한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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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기원전 27년 - 로마 제국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프린켑스(제1시민)',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 등의 칭호를 받았다.

1919년 -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1966년 - 존슨 아그이이론시가 나이지리아의 대통령직을 시작했다.

1969년 - 구소련의 우주선 소유즈 4호와 5호 우주 도킹.

1979년 - 이란 국왕 레자 샤 팔라비가 이란 혁명으로 망명.

1991년 - 연합군, 걸프 전쟁으로 이라크 공중폭격 실시.

걸프 전쟁은 미국 주도의 34개국 다국적 연합군 병력에 의해 수행된 전쟁으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및 병합에 반대하면서 일어났다. 1990년 8월 2일부터 1991년 1월 17일까지의 기간을 사막 보호 작전이라 부르는데 이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하고 다국적 연합군을 편성하였고, 1991년 1월 17일부터 종전까지를 사막의 폭풍 작전이라 부르는데 이 기간이 다국적 연합군의 전투 기간이다. 이 전투는 페르시아만 전쟁, 제1차 걸프 전쟁, 쿠웨이트 전쟁, 제1차 이라크 전쟁, 또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용어로 인식되기 전까지 이라크 전쟁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걸프 전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라크 군이 1990년 8월 2일 시작한 쿠웨이트 점령은 국제적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며 유엔 안보리에 의해 즉각적인 이라크 제재를 유발했다. 미국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는 미군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하고 다른 국가들에게 자국 병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편성된 연합군 중 가장 큰 병력을 보유한 군사 동맹이 탄생하였으며, 주도 국가는 영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집트였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전쟁 비용은 연합군의 군사 비용인 600억 달러 중 360억 달러를 차지하였다.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인 CNN 위주로 최전방의 전투가 보도되었다. 전쟁은 사막의 폭풍 작전 기간에 미국 폭격기가 폭격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고하면서 비디오 게임 전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라크 군대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려는 첫 충돌은 공중 및 해상 폭격과 함께 1991년 1월 17일에 시작되어 5주 간 지속되었다. 이후 2월 24일 대규모 지상 공격이 이어졌다. 이것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대를 몰아내고 이라크 영토로 진격한 다국적 연합군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승리였다. 이후 연합군은 진격을 멈추고 지상전이 시작된 지 100시간 만에 정전을 선언했다. 공중 및 지상 전투 부대는 이라크, 쿠웨이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지역에 주둔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전쟁 기간에 이라크 군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연합군의 군사 시설 및 이스라엘을 상대로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전쟁 이후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산업 시설이 완파되었으며, 이라크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 하에 제재를 받았다. 또한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에 있는 정유소를 파괴함으로써 페르시아 만이 오염되었다.


2015년 -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리에 있는 중앙고속도로 부산방면 345KM 지점에서 43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문화

2004년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97의 판매 및 지원 중단.

2014년 - 대한민국의 7인조 남성그룹 GOT7(갓세븐) 데뷔. 데뷔앨범 , 데뷔곡 Girls Girls Girls.

2015년 - 대한민국의 6인조 여성그룹 여자친구 데뷔, 데뷔곡 유리구슬.

 

탄생

1728년 -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니콜로 피치니.

1825년 - 남부연합의 군인 조지 에드워드 피켓.

1860년 - 조선에 파견되었던 캐나다의 의사겸 선교사, 광성고등학교 설립자 윌리엄 제임스 홀(Dr. William James Hall)

1901년 - 쿠바의 정치인 풀헨시오 바티스타.

1903년 - 대한민국의 시인 김영랑.

1915년 - 미국의 전 해군 안수산.

192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부일.

1929년 -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영부인 손명순.

1933년 - 미국의 소설가 수전 손택.

1967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민교.

1972년 - 대한민국의 야구인 권준헌.

1974년 - 영국의 패션 모델 케이트 모스.

197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홍세완.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조우진

1980년 -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선수 앨버트 푸홀스.

1980년 - 말리의 축구 선수 세이두 케이타.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민기.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전민경.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파블로 사발레타.

1988년 - 덴마크의 축구 선수 니클라스 벤트네르.

1996년 - 대한민국의 래퍼 제니 (블랙핑크).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승관 (세븐틴).

2003년 -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주혜린.

2009년 -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나하은.

 

사망

1710년 - 제113대 일본 천황 히가시야마.

1864년 -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

1944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육사.

이육사 선생님

이육사1904년 5월 18일 (1904년 음력 4월 4일) 본명 이활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보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20대 초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큰형인 원기, 맏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이원록의 필명은 여러가지가 있고, 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가 있어 기재한다.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이육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요양을 위해 집안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육사가 어느 날 이영우에게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표현이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陸史를 쓰라'고 권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肉瀉'라는 이름은 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뜻으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1932년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했을 적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기사를 네 차례 연재할 때 사용되었다. 이육사의 필명이나 호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李活(1926-1939), 大邱二六四(1930), 戮史(1930), 肉瀉(1932), 陸史(1932-1944)와 같고 이원록이 '陸史'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25년 가을부터 2~3학기 동안 베이징에 있던 공립 중궈 대학에 들어가 문과 수업 등을 청강하기도 하였다. 중화민국 국민당 군사위원회에서 난징에 창설해 김원봉이 조선인 항일 군관 훈련반 대장에 있던 군사학교에 1932년 9월 입학하여 보병 육성과 특수 부대원 훈련을 받고 이듬해 4월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상하이를 경유하여 귀국하였는데, 1933년 6월 상하이에서 들렀던 한 중국 국민당 인사의 장례식 자리에서 루쉰을 우연히 한 번 보게 되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육사는 루쉰의 1921년작 단편 소설 고향을 식민지 조선에 번역해 내놓기도 했다.

1943년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베이핑(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육사는 살아 생전 시집을 출간하지는 못하였고 순국 후, 당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인 둘째 동생 이원조가 형인 육사의 시를 모아 1946년 유고시집인 육사시집을 출간하였다. 유고시집 출간 시에 동생 이원조는 형인 육사의 시작활동에 대해 "혁명가적 정열과 의욕"으로 "시에 빙자해 꿈도 그려보고 불평도 폭백한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이육사는 항일 비밀결사 단체 ‘의열단’에 가담하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시작을 한 까닭에 남겨진 시는 30여 편에 불구하였으며, 자신의 시작활동에 대한 생각은 "계절의 오행"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는 이 가을에도 아예 유언을 쓰려고는 하지 않소.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이 짧은 글을 통해 육사 본인의 시작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읽어낼 수 있으며, 대표적인 시는 다음과 같다.


■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꽃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한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셋째 동생 이원창이 그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고, 광복 후 1960년 안동시에 이장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하의 그의 항일 투쟁 활동과 일제 강점기 하의 詩作활동을 기려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1990)',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탄신 100주년과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는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또한 안동시는 안동 강변도로를 '육사로'로 명칭하였다.


1972년 - 미국 영상작가 로스 백다사리안 시니어.

2017년 - 미국의 우주비행사 유진 서넌.

2018년 - 대한민국의 시인 이승훈.

2018년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심융택.

 

기념일

종교 자유의 날(National Religious Freedom Day): 미국

교사의 날: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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