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월 29일 - 소소한 세상 이야기

반응형

사건

661년 - 알리의 죽음으로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다.

757년 - 연(燕)의 황제 안녹산이 아들 안경서(安慶緒)의 손에 죽다.

1802년 - 존 버클리가 미국 의회도서관 최초로 사서 고용.

1819년 -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 싱가포르 상륙.

1861년 - 캔자스주가 미국의 34번째 주가 되었다.

1955년 - 미국 의회, 대만방위결의안 통과; 대통령에게 무력사용권한 부여.

1955년 - 단성사 앞 저격 사건이 일어나다.

1960년 재수사한 단성사 앞 저격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김동진

단성사 앞 저격 사건은 제1공화국 1955년 1월 29일 자유당과 결탁한 이정재의 폭력 단체 동대문 사단 소속 김동진이 조봉암, 신익희 등 40여 명의 암살 명단을 폭로한 뒤 단성사 앞에서 저격당한 테러 사건이다.

이정재는 자유당의 지시를 받아 세칭 제삼 세력 살해 음모를 계획했고 자신의 부하 김동진에게 조봉암, 신익희 등 40여 명의 인물들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동진은 이 명단을 폭로하면서 시경에 신고하였다. 이후 김동진은 잠적한 뒤 영화를 보기 위해 단성사를 찾았고 영화가 끝난 후에 단성사 앞에서 이정재의 부하이자 재종질 이석재에게 저격당해 중상을 입었으며 이석재는 곧바로 구속, 검찰은 김윤도 검사의 지휘로 이 사건을 수사하여 이정재를 살인교사죄로 구속하였으나, 곽영주와 자유당의 방해로 새로운 검사로 교체되면서 이정재는 다시 석방되었으며 이석재만 구속 기소되었다.


1968년 - 베트콩이 남베트남을 상대로 구정 공세를 시작하다.

2002년 -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언급.

2008년 - 소행성 2007 TU24가 지구와 약 55만km 정도로 근접하다.

 

문화

1944년 - USS 미주리 (BB-63)의 진수식이 거행되다.

2011년 - 2011년 AFC 아시안컵 3·4위전이 열리다.

2017년 -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데뷔 1년만에 전격 해체하였다.

 

탄생

919년 - 요나라의 제3대 황제 세종

1737년 -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

1749년 -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7세

1843년 -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1846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가진.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7월 4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후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다.

자는 덕경, 호는 동농, 본관은 신 안동. 병자호란 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직계 후손이며 예조판서 김응균의 아들이다.

판사 대신 주일공사를 역임하고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회 의원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했다.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했고, 대한협회 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일제 강점 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 작위가 주어졌다. 1919년 의친왕 망명 기도 사건에 가담하였고, 자신 역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아호가 동농이므로 동농 김가진으로 부른다.

세도가인 안동 김 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얼이었기에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1877년 서얼들의 관직이었던 규장각 검서관으로 관직을 시작한다. 1883년 인천항 통리 교섭 통상 사무아문(외교업무 관장)이 신설되어 유길준과 함께 주사로 임명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고종과 명성황후의 면전에서,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나라를 배격, 조선의 자주독립 쟁취를 역설했다고 이홍장이 기록했다.
갑신정변 이후 적서 차별이 철폐되자 1886년 늦은 나이에 정시문과 병과로 급제, 홍문관 수찬이 된다. 동년 7월, 청나라를 밀어내려 러시아와 밀약을 추진하다가 노출, 청나라의 총리 교섭 통상 대신 원세개가 소인이라고 부르고 원세개의 압력으로 전라도 남원에 유배된다.
유배에서 풀려나 주진 종사관으로 임명, 중국 천진에 파견되었으며, 1887년 5월, 주차 일본공사관 참찬관으로 주일 변리 대신 민영준을 따라 일본 동경으로 간다. 그해 10월, 민영준이 귀국하고 김가진이 뒤를 이어 정 3품 판사 대신 주일공사가 된다. 당시 조선 외교관은 현지 중국대사관에 출두, 자신의 임명을 보고해야 했는데, 김가진은 이를 굴욕으로 여겨 거부하기도 한다. 4년간 동경에 주재했고, 1891년 귀국, 안동부사를 지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청나라를 제압하고, 조선은 갑오경장을 단행한다. 이때 김가진은 협 판교 섭 통상 사무로 발탁되며 조선정치무대의 중심에 진입한다. 군국기무처회 의원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했고, 김홍집 내각 정식 출범 시 김가진은 외부협판에 임명된다.


1895년 농상공부대신을 역임하고 상무 회의소 발족, 1896년 1월 건양협회 창립에 가담하였고 1896년 7월, 독립협회의 창설에 참여하며 위원으로 선임된다.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고, 만민공동회에 가담했다. 독립문 현판석의 ‘독립문’ 글씨를 한자와 한글로 썼다.
1897년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됐고, 1902년 언문 학교를 설립. 한글교육에 나선다 다시 농상공부대신에 임명되고, 9월에는 법부대신으로 선임되며, 이때 창덕궁 후원인 비 원장을 겸임, 오세창과 함께 비원을 중수한다. 1905년 민영환 등과 함께 을사조약 체결에 격렬히 반대하지만 실패하자, 1906년 충남 관찰사로 자진 좌천한다. 순종이 즉위한 1907년, 규장각 제학을 마지막으로 조정에서 퇴장한다.
1908년 6월, 대한협회 회장에 취임, 대한민보를 발행 등으로 국가주권 회수에 나섰으며,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뒤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 작위가 주어졌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전협, 최익환 등은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 비밀조직 대동단을 결성하며, 김가진이 총재로 추대되었다. 10월, 김가진과 그의 아들 김의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결행하며, 김가진은 임시정부 및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의 고문이 되었다. 이후 대동단은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망명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망명 도중 중국 안동 (현재의 단동)에서 일제에 발각되어 무산되고 말았다. 1920년 3월에는 총재 명의로 포고문·통고문을 배포했으며, 대동단의 박용만. 나창헌. 손영직. 고광원 등과 공동명의로 갹금 권고문을 발표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그를 회유하고자 상하이에 밀정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1922년 7월 4일 77세를 일기로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임시정부가 주관,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다. 한학에 정통했고 서예로도 유명하다. 미불체와 동기창 체에 능했다.

그러나 수작 등의 이유로,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보류했다. 김가진의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각각 독립장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

2001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체부동에 김가진 집 터 표석이 설치되었다.


1860년 -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

1902년 - 마카오 정치가 겸 외교관 루주즈.

1904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제술.

191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동균.

1926년 - 파키스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압두스 살람.

1930년 - 대한민국의 시인 천상병.

1940년 - 미국의 배우 캐서린 로스.

1942년 - 쿠바의 우주인 아르날도 타마요 멘데즈.

1947년 - 미국의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린다 벅.

1948년 - 일본의 우주인 모리 마모루.

1953년 - 중화민국의 가수 등려군. / 대한민국의 과학자, 수의사 황우석.

1954년 -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1959년 - 대한민국의 미스코리아 출신 가수 김성희

1960년 - 미국의 다이빙 선수 그레그 루가니스.

1966년 -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마리우.

1968년 - 대한민국의 성우 배정미.

1969년 - 일본의 가수 하이도.

1972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종훈.

1974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 원정화. / 일본의 성우 나카야마 사라. / 대한민국의 희극인 조지훈.

1982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동진. / 일본의 여성 아나운서 스즈키 나오코.

1985년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사재혁. /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 더 콰이엇.

1987년 - 미국의 야구선수 호세 아브레유.

1990년 - 폴란드의 축구 선수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 / 노르웨이의 축구 선수 잉리 모에 볼.

1993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프랜 커비.

1994년 - 일본의 성우 사쿠라 아야네.

200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대휘 (AB6IX, 워너원).

 

사망

661년 - 이슬람의 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1730년 - 로마노프 왕조의 군주 러시아의 표트르 2세.

1820년 - 영국의 국왕 조지 3세.

1918년 - 프랑스의 중국학자 에두아르드 샤반느.

1934년 -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

1943년 - 제정러시아의 정치인 블라디미르 코콥초프.

1962년 -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

1963년 -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1975년 - 대한민국의 군인 안광수.

2006년 - 대한민국의 현대 미술가 백남준.

200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창익.

201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남이.

2016년 -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리베트.

2017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갑상.

2019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잉그램.

 

기념일

캔자스 데이(Kansas Day): 1861년 1월 29일 캔자스주가 미연방의 34번째 주로 편입된 것을 기념하는 날.

한국의 설날 - 1987년, 2006년, 2025년, 2063년, 2082년

 

 

반응형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