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2월 6일 - 소소한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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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기원전 746년 -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 최초로 개기월식을 사서에 기록.

940년 - 헤이안 시대의 해적 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스미토모의 난(藤原純友の乱)을 일으키다.

1685년 - 영국의 찰스 2세가 사망하고 동생인 제임스 2세가 즉위하다.

1778년 -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와 미국이 우호통상 조약과 동맹 조약을 체결하다.

1788년 - 매사추세츠주가 미국의 6번째 주가 되었다.

1819년 - 스탬퍼드 레이플(Stamford Raffles)과 조호르의 후세인 술탄(Hussein Shah of Johor)이 싱가포르에 무역 거점을 세우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함.

1840년 - 영국이 뉴질랜드 마오리족과 와이탕이 조약 체결.

1922년 - 교황 비오 11세, 259대 로마 교황 취임.

1952년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1958년 - 뮌헨 비행기 참사.

2001년 - 이스라엘에서 총리 선거가 실시되어 아리엘 샤론이 당선되다.

2012년 -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지 60년이 되어 다이아몬드 쥬빌리를 거행하다.

독일계 특수화학기업 랑세스가 인도 구자라트에 신규 생산공장 3곳을 신규 가동하다.

2013년 -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인근에서 규모 8의 강진이 발생, 1.5m의 쓰나미가 일어나서 최소 5명이 사망하였고, 3명이 부상당했다.

2014년 -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윤진숙이 전격 경질되었다.

 

문화

1994년 - 미국 팝 록 밴드 마룬 5 결성.

1999년 -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 폐막.

 

탄생

976년 - 일본의 67대 천황 산조 천황

1536년 - 일본의 사무라이 삿사 나리마사

1577년 - 이탈리아의 귀족 여성 베아트리체 첸치

1665년 - 영국의 국왕 앤 여왕

1756년 - 미국의 정치가 에런 버.

1833년 - 미국의 군인 젭 스튜어트.

1895년 - 소련의 군인 세묜 티모셴코.

1895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

1920년 뉴욕양키스 시절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George Herman Ruth, Jr., 1895년 2월 6일 ~ 1948년 8월 16일)는 베이브 루스(Babe Ruth)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전설적인 홈런왕이었다.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22시즌을 뛰며 당시 최고 기록인 통산 71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1974년 행크 에런이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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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베이브 루스는 1895년 2월 6일 미국 동부 볼티모어에서 당시 선술집 주인과 피뢰침 제조업자 사이를 전전하던 독일계 이민자 조지 허먼 루스(George Herman Ruth, Sr)와 케이트 삼버거(Katherine Schamberger)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입담배를 질겅거리던 문제아였던 왼손잡이 소년 루스는 1902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로마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성모 마리아 직업학교(영어: St.Mary Industry School)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12년 동안 루스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람인 로마 가톨릭 사제 마티어스 신부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야구를 배우게 되었다. 또래보다 배는 큰 덩치를 지녔던 루스는 곧 지역에서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리틀 야구 선수가 됐다. 세인트 메어리의 8백여 학생으로 구성된 40여 개 팀의 ‘작은 메이저 리그’가 구성돼 있었고, 루스는 처음에는 포수로, 다시 왼손 투수로 뛴 루스는 세인트 메어리 공업학교를 나설 무렵인 1913년에는 아마추어팀이나 세미프로팀으로부터 초청을 받게 되었다. 결국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프로 팀들의 주목까지 받게 되었고, 마침내 보스턴 레드삭스는 루스를 영입하게 되었다.

■ 보스턴 레드 삭스 시절

당시 일반인보다 월등하고 완벽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던 루스는 더구나 희귀한 왼손 투수였다. 마이너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거쳐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들어간 베이브 루스는 아직 조지 루스로 불렸다. 봄의 전지훈련과 시범경기를 거치면서 가공할 장타력과 피칭 솜씨를 보여줬고, 기자들은 그의 이름 앞에 ‘어린아이’라는 뜻의 애칭 ‘베이브’를 붙였다. 이 낱말은 나중에 ‘거구의 야구 선수, 특히 베이브 루스’라고 사전에 오르게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빅리그 데뷔 첫 해였던 1914년, 적응기를 거친 루스는 이듬해 1915년 18승, 그리고 1916년과 1917년에는 각각 12승과 13승을 올렸고, 개막전 3년 연속 승리 투수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1918년 시즌, 루스는 워낙 독보적인 타격 재능을 숨기지 못하고 투수로서 18승을 올림과 동시에 타자로서도 단 95경기만을 뛰고도 11개의 홈런을 쳐내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등극하게 되었다.

타이 캅을 비롯한 수많은 강타자가 즐비하던 그 시절에는 홈런 타자인 베이브 루스는 정통파를 자처하는 야구인에게 은근히 경멸받았다. 더구나 잘나가는 왼손 투수인 그를 타자로 전향하게 만드는 일은 ‘투수의 시대’인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튼 1918년 5월 무렵부터 주전 외야수가 트레이드 되어 구멍 뚫린 외야와 타선을 메우려고 베이브 루스를 그 자리에 넣었고, 그는 그해에 .484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1919년에는 주로 타자로 뛰면서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29개의 홈런(2위와 거의 3배 차이가 나는)을 쳐내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하며 역사상 최강의 타자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되었다.

■ 뉴욕 양키스 시절

연극 연출가이자 제작자였던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새로운 뮤지컬 제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5년간 3번의 월드 챔피언을 가져다 주었던 루스를 양키스에 12만5천 달러에 팔았다. 공교롭게도 보스턴 레드삭스는 그 이후 2004년까지 86년간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를 밤비노의 저주라고 부른다.

뉴욕 양키스로 건너온 루스는 1920년부터 무차별적인 투수 사냥에 나서게 되었다. 이적 첫 해인 1920년에 54개, 1927년에는 60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홈런 타자로서 이름을 날렸고, 팀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과 함께 최고의 클린업 듀오를 형성하게 되었다. 베이브 루스가 홈런 타자로서 성공한 이후로 로저스 혼스비, 해리 하일먼 등 슬러거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자연스럽게 팬들의 관심도 투수에서 타자 쪽으로 옮겨갔으며, 특히 홈런 타자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투수에게 허용됐던 여러 가지 행위, 곧 공에 흠집 내기 등이 금지되었고, 때리면 멀리 날아가는 코르크심 야구공이 도입되었다.

1935년 베이브 루스는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방출되었고, 그해 6월 은퇴했다. 그는 감독이 되고 싶어했지만, “자기 자신도 감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감독할 수 있나”라는 야구계의 평판 때문에 아무도 그를 감독으로 쓰려 하지 않았다.

베이브 루스는 1918년부터 1934년까지 17시즌 동안 12번 홈런왕에 올랐고, 1935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714개의 홈런과 2217타점, .342의 타율을 기록했다.

■ 예고 홈런 전설

베이브 루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점수는 5회까지 4:4, 원아웃. 상대 팀인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는 5만 명의 관중은 루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관중석에서 던진 레몬이 루스의 얼굴을 정면으로 맞추었다. 얼굴을 붉힌 루스가 타석에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센터 쪽을 가리켰다. 바로 그다음 루스는 바깥쪽 낮게 깔리는 커브를 후려쳐 센터 쪽 관중석 한구석에 정확하게 꽂았다.

1932년 10월 1일 뉴욕 양키즈와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발원한 이 ‘예고 홈런’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이다. 물론 루스가 “홈런을 날리는 데는 공 하나이면 충분하다.”라고 경기 전에 장담하기는 했지만, 경기 중에 손가락으로 예고하지는 않았다. 그날 경기를 지켜본 한 기자가 별 생각없이 끼워넣은 일화가 전설 만들어냈다. 베이브 루스는 홈런을 치고 헐렁한 바지로 베이스를 돌기도 하였다.



1905년 - 체코 소설가 얀 베리흐.

1911년 -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1931년 - 필리핀의 추기경 리카르도 비달.

1932년 - 프랑스의 영화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 쿠바의 혁명가, 아나키스트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1940년 - 미국 NBC 방송의 전직 뉴스 앵커 톰 브로코(Tom Brokaw).

1942년 - 대한민국의 국악인 신영희.

1945년 - 자메이카의 싱어송라이터 밥 말리.

194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 조선일보 대표이사 방상훈.

1962년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액슬 로즈.

1965년 - 대한민국의 개그맨 & MC 김국진.

1966년 - 영국의 가수 릭 애스틀리. / 대한민국의 배우 전진기.

1967년 - 일본의 가수 사카이 이즈미.

1969년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

1969년 - 스위스의 축구 심판 마시모 부사카.

1974년 - 일본의 성우 요시노 히로유키.

1976년 - 인도네시아어 가수 프랑수아 모어이드.

1980년 -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 곽방방. / 일본의 성우 노토 마미코.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심은진 (베이비복스)

1982년 - 대한민국의 개그우먼 허미영. / 잉글랜드의 배우 앨리스 이브

198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류상문.

1985년 -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가토 조지.

1986년 - 대한민국의 가수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1987년 - 미국의 배우 데인 드한. / 일본의 배우 이치하라 하야토. / 스웨덴의 축구 선수 리사 달크비스트.

1991년 - 대한민국의 모델 서윤지. / 대한민국의 모델 심채원.

1993년 - 대한민국의 빙상인 김보름. / 대한민국의 야구인 박민우.

1995년 - 대한민국의 가수 종업 (B.A.P).

사망

1465년 - 조선의 문신 권람

1685년 - 영국의 왕 찰스 2세

1740년 - 246대 로마 교황 클레멘스 12세

1804년 - 영국의 신학자, 철학자,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1952년 - 영국 국왕 조지 6세

1975년 - 일본의 군인 사토 겐료

1984년 -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미하라 오사무

1995년 - 대한민국의 문인 조용만

2010년 -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이영덕

2011년 - 영국의 가수 게리 무어/ 안중근의 손녀 안연호

2015년 - 대한민국의 전 기초단체장이자 영화배우 이대엽

2017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길호

2018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한일

2019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영진

2019년 - 독일의 물리학자 만프레트 아이겐

 

기념일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할례 철폐의 날(International Day of Zero Tolerance to Female Genital Mutilation).

사미 국경일(Sami National Day):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와이탕이 데이: 1840년 와이탕이에서의 와이탕이 조약 체결을 기념하는 날, 뉴질랜드

하트 트루스(The Heart Truth): 여성 심장 질환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캠페인. 미국국립심폐혈연구소(NHLBI) 미국 보건복지부(HHS)후원으로 열림. 캐나다는 캐나다 심장재단(HSFC)이 후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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