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 소소한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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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소한 H입니다.

 

오늘은 101주년이 되는 삼일절입니다.

 

그리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드디어 국내로 송환됩니다.

 

홍범도장군 탄생 150주년 기념 우표

 

지난 2019년 4월 카자흐스탄을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사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내년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0년"이라며 유해 송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에 토카예프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역사적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며 "양국 관계와 국민 간 교류를 감안해 내년 행사 때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계봉우. 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해 안장하게 될 것입니다.

 

2019년 4월21일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지사 유해 봉환식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1992년 우리나라가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 추진되었고,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란 점을 들어 연고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자흐스탄 정부나 동포 사회는 남북 사이에서 장군 유해 봉환에 선뜻 나서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홍범도 장군이 여전히 카자흐스탄 동포 사회에서 정신적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고려인들은 크질오르다에 장군의 묘역을 조성하고 장군을 민족 지도자로 기렸습니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할 정도로 장군을 존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유해 봉환에 가장 동의가 필요한 장군 후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점도 어려움으로 작용했습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추모공원의 홍범도 장군 동상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의병 투쟁에 몸을 던졌습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에 올라 간도와 연해주에서 일제와 싸웠고. 3.1 독립운동 이듬해에는 독립운동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장군은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정책 탓에 연해주에서 크질오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고, 장군은 이후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 생활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가 75살로 숨졌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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