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이야기 3월 1일 - 소소한 세상 이야기

반응형

 

사건

기원전 752년 - 로물루스가 주최한 축제(Neptune Equester)에서 로마인들이 손님으로 온 사비니 여인을 습격하여 납치(The Rape of the Sabine Women)하다.

기원전 86년 - 로마 공화정 군대의 수장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아테네에 입성, 미트리다테스 6세의 지원을 받은 폭군 아리스티온(Aristion)을 제거하다.

492년 - 교황 젤라시오 1세가 임기를 시작하다.

705년 - 교황 요한 7세, 86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

926년 - 발해 멸망.

본원적인 발해 유적과 말갈 유적의 본포를 통해 비정한 발해의 영역

발해(698년 ~ 926년)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로, 698년부터 926년까지 약 228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등에 걸쳐 존속하였다. 진국이라는 이름으로 건국하였다가 713년 발해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일컫는 별칭으로는 진, 고려, 북국, 말갈, 발해 말갈, 북적 해동성국, 모싀 구르(거란어: mos-i gur) 등이 있다.

스스로를 천손임을 자처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였다. 무왕과 문왕대에 당, 신라, 일본과 외교를 수립하고 교통로를 통해 무역이 성행하였으며 8세기부터 9세기까지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과 안정이 이루어졌다. 그 후의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9세기 중엽 선왕대에 이르러 요동을 점령하였고, 동북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최대의 판도를 이루었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926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1565년 - 리우데자네이루가 세워지다.

1627년 - 정묘호란 발발.


1803년 - 오하이오주가 미국의 17번째 주가 되었다.

1867년 - 네브래스카주가 미국의 37번째 주가 되었다.

1896년 - 아도와 전투에서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를 격파하면서 1차 에티오피아-이탈리아 전쟁이 끝나다.

1917년 - 미국 정부가 소위 치머만 전보를 공개하다.

1919년 -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함. (3·1 운동: 오후2시 30분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

기미 독립 선언서

3·1 독립선언서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초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1919년 2월 1일에 중국 지린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와 일본 도쿄에서 선포된 2·8 독립 선언의 영향을 받았다.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다. 일본 제국에 강제로 병합된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총독부에 자진 투옥함. 이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에서 2만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월 28일에 1,500여 장을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를 그 밖의 각처와 각 지방에 분배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선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2016년 10월 20일 2건의 문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1932년 - 일본 관동군은 1931년 9월 '만주사변'으로 조선의 만주를 점거한 뒤 '만주국' 성립을 선언.

1936년 - 후버 댐이 완공되다.

1947년 - IMF 협정이 발효되어 국제 통화 기금(IMF)이 업무를 개시하다.

1952년 - 2차대전 이후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북해의 섬 헬골란트 섬을 독일에 반환하다.

1954년 -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제5 후쿠류마루가 미국의 수소 폭탄 실험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되다.

1956년 - 동독군 창설.

1974년 -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

1997년 - 쌍용제지가 1980년 1월부터 생산한 화장지 비바와 스카티의 생산과 판매를 중지하다.

1999년 - 오타와 협약 발효.

2006년 - 철도노조 총파업을 투쟁하다.

2010년 - 2010년 삼일절 사이버 공격이 일어났다.

2010년 3월 1일 삼일절을 맞아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한국 커뮤니티 유저들이 일본의 2ch에 과다 트래픽을 발생시킨 사이버 공격이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서로의 국경일에 사이버 공격을 매번 하고 있었는데, 2010년의 사이버 전쟁은 대규모로 치러져 아직까지 회자되는 사건이다.

2010년 한일 사이버전쟁 설명 전에 첫 전쟁의 역사를 먼저 설명하자면, 2004년 사이버 갑신왜란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과 일본의 첫 사이버 전쟁으로, 2ch에 활동하던 혐한들이 한국을 비하하는 k국의 방식을 운영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일본의 혐한들이 k국의 방식을 운영한다는 것이 한국의 커뮤니티에 알려지자 디시 등지에서는 J국의 방식이라고 대응하는 사이트를 만든다.

참고로 이 시기는 일본 시네마 현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한국과 일본은 국교 단절 직전까지 갈 정도로 험악해져 있었던 상황이다.

양국 네티즌은 이때 서로를 공격하는 짤들을 대거 생산하며 넷상에서 소극적인 충돌을 벌였다.

 


서로 충돌이 있던 중, 당시 서로 앙숙이라고 불린 디시인사이드와 웃긴 대학이 이례적으로 동맹을 맺고 혐한 사이트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2ch에 공격을 하면서 전쟁 모드에 들어간다.

이 전쟁에선 2ch는 접속이 원활하지 못했고 대문이 김유식(디시인사이드 설립자)사진으로 교체되는 등 패배를 당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0년, 2010 삼일절 대규모 사이버 전쟁이란 대규모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의 씨앗은 2010년 2월 18일. 러시아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구타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일본 2ch에서는 이 사건을 보고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의 선행이다” “개를 죽였는데 뉴스에 왜?”라는 등의 망언을 쏟아붓는다.
 
이 2ch의 댓글은 번역되어 디시인사이드 코갤로 들어가면서 전쟁의 씨앗이 되게 된다.
(이 사건 전에도 김연아 선수의 높은 쇼트 점수에 심판 매수 드립 등으로 쌓였던 것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인관이라는 사이버 지휘관(?)이 네이버 테러대응연합 카페를 중앙 지휘소로 삼아 전쟁을 준비한다.

이 홍보용 포스터가 각 커뮤니티에 널리 널리 퍼지고. 하나둘씩 일본 2ch를 공격하기 위해 모여든다.  

이때 참여한 커뮤니티 연합군. 웃긴대학, 루리웹, 엽기 혹은 진실, 오늘의 유머, 다음 아고라 등등.

단 하루만에 카페 회원 수 1만 2천 명, 동접수 3,000명 을 돌파하기도 했다.
(충돌 당일에는 총 인원 10만 명이 넘는 사람에 동접수 12,000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사이버 전쟁 (3월 1일) 전날 대치 상황>
<2월 25일>
디시인사이드 페이지 로딩이 갑자기 느려지더니 일본어로 된 글들이 올라온다. 네티즌들은 이를 보고 일본의 소행이라 생각해 소규모 테러를 감행했다.

<2월 28일>
2ch에서 갑자기 디시인사이드에 선제공격을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사이버 전쟁 당일(3월 1일)>
오후 1시
공격 측은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도배, 한쪽은 새로고침 키인 F5공격 및 DDoS 공격을 하는 공격으로 공격을 개시한다.

오후 1시 3분
시작 3분만에 2ch의 VIP라는 게시판이 마비  

오후 1시 13분
2ch의 서버 5개가 마비  

오후 1시 16분
2ch의 메인이 트래픽 초과로 원활히 접속되지 않음  

오후 1시 22분
2ch의 33개의 서버 중,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마비

오후 1시 44분
2ch 전 서버가 다운

오후 2시 13분
2ch 메인 페이지가 해킹되어 태극기가 걸린 페이지로 바뀜

오후 3시 35분
2ch 측이 한국 IP를 막았으나, 서버는 복구되지 않음.

게다가 일본 측 공격 지휘부(IRC 등)가 재일교포 스파이 등에게 계속 발각되면서 폭파된다.

*일본어가 가능하고 IP 제한이 되지 않는 재일교포 전사들은 일본 팀이 타 사이트로 지휘소를 옮긴다고 하면, 이를 한국 지휘소에 알려 일본 팀이 지휘소를 옮기기도 전에 지휘소(사이트) 서버를 폭파시켰음.

오후 6시
일본 네티즌들이 한국 청와대 사이트를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발견.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정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한국 네티즌들은 이 행동을 비웃으며 “그래 좀 털어봐라”식으로 나오거나 일본과 같이 공격에 동참을 함.

오후 6시 11분
반크 홈페이지(전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바르게 알리고, 외국인과 한국인들 대상으로 친구 맺기를 주선하는 사이트)를 공격 반크 사이트는 1시간 동안 마비가 됐고(반크 서버의 라우터 몇 개가 폭파되었다는 설도 있다)  

오후 6시 38분
디시인사이드 코갤이 잠시 다운되었으나 4분만에 복구된다.

오후 8시 43분
2ch 측의 지휘관이 공격 중지 선언을 했고, 오후 9시 35분에는 2ch 서버가 8시간 닫히게 된다.

 

그리고 MBC 9시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  

3월 2일. 오후 6시
2ch서버가 하나둘씩 복구되기 시작.

오후 7시
일본 네티즌들이 반크를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돌아감.
하지만 한국 네티즌들은 이 공격에 대응해 일본의 지휘 및 관제소를 다운 시킴.

오후 8시
2ch에서 다시 공격을 개시하나 실패

오후 10시
반크에서 일본IP를 모두 차단

오후 11시
네이버 카페가 블라인드 처리가 되어 애국지사 연맹협회라는 카페로 대피

3월 5일.
2ch에선 공격 포기 선언과 약 5개월 후인, 8월 15일에 공격하겠다고 기약하며 삼 일 전 사이버 전쟁이 종료  

8월 15일
재공격이 예고되었지만 양측 모두 공격없이 지나감.

실제 전쟁상황과 비슷한 이 사이버 전쟁은 2ch의 서버를 관리하는 미국 데이터 서버회사가 사이버테러로 신고하여 실제 FBI가 수사에 착수할 정도로 큰 반항을 일으킨 사건이 된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이긴 병신이 되자! 라는 다짐으로 시작한 한일 사이버 전쟁은 2ch 측은 피해 금액이 약 250만 달러 (약 31억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이외 2ch 몇몇 서버는 복구가 어려워 다른 서버로 게시판을 재구축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피해는 사이트가 느려지는 것을 제외하면 피해가 거의 없었다.

본 내용 출처 지식의 정석

 

문화

1946년 - 대한국제항공사 창립.

1955년 - 대한민국 육군본부, 대구서 서울로 이전하다.

1969년 - 대한항공 창립.

1995년 - 대한민국 YTN, 평화방송, MBN, KTV, BTN, Mnet, KMTV, DCN(現 OCN) , 캐치원(現 캐치온) 등의 케이블 TV 방송국들이 개국하였다.

1995년 - 서울시 구로구의 남동부와 경기도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합쳐져 금천구로 분리독립했다.

1996년 - 경기도 용인군 일원이 용인시로 승격.

1996년 - 일제 강점기 1941년부터 사용되었던 국민학교란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다.

2002년 - 대한민국의 CBSTV, 시민방송,제3영화채널(현 엠플렉스) 등의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개국.

2004년 - 서울방송(SBS)이 여의도 시대를 마감하고, 양천구 목동에서 신사옥 시대를 시작.

2007년 - 경부선에 전기기관차가 투입되었다.

2019년 - 3·1 운동 100주년.

 

탄생

1265년 -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

1445년 -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1633년 - 조선의 문신, 시인 이서우.

1810년 - 폴란드의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

1821년 - 조선의 가톨릭 신부 최양업.

1858년 -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

1892년 -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90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1904년 - 독일계 미국인, 트럼본 연주자이자 스윙 재즈의 대가 글렌 밀러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최영희.

1930년 - 프랑스의 작곡가 피에르 막스 뒤부아.

194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주현.

1944년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제정구. /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재정.

1952년 - 영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마틴 오닐.

1959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사업가 주병진.

1964년 - 스페인의 축구 심판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

1965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 감독, 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황보관.

1967년 -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아론 빈터르. / 미국의 배우 조지 이즈.

1969년 - 대한민국의 범죄인 정남규. / 스페인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1970년 - 대한민국의 현 야구 코치 , 전 야구 선수 정민태.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마동석.

197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곽채진.

1974년 - 이탈리아의 작가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197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모델 김준희.

1977년 - 대한민국의 한화 이글스의 야구 선수 송신영.

1978년 - 일본의 성우 노가와 사쿠라. / 대한민국의 배우 오승현.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희.

1983년 - 케냐-멕시코의 배우 루피타 뇽오.

1984년 - 대한민국의 한화 이글스의 야구 선수 정현석.

1985년 - 대한민국의 양궁 선수 윤옥희.

1986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차유나.

1987년 - 미국의 가수 케샤. / 대한민국의 가수 김그림.

1988년 - 대한민국의 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 양현종.

1989년 - 멕시코의 축구 선수 카를로스 벨라.

199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소혜.

199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원호 (몬스타엑스).

1994년 - 캐나다의 가수, 배우 저스틴 비버.

2003년 - 미국의 배우 밀리센트 시먼스.

 

사망

991년 - 제64대 일본 천황 엔유

1792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레오폴트 2세.

1924년 - 스웨덴의 수학자 헬리에 본 코크.

197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문흠.

1980년 - 영국의 전 축구 선수 딕시 딘.

1995년 - 독일의 생물학자,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게오르게스 J. F. 쾰러

2019년 - 대한민국의 의사 조운해

2019년 - 러시아의 물리학자 조레스 알표로프

2019년 - 아일랜드의 건축가 케빈 로치

 

기념일

대한민국의 3·1절

무스타파 바르자니(Mustafa Barzani) 추모일: 쿠르드 자치구

구 동독의 국가 인민군의 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 기념일

돼지의 날(National Pig Day): 미국

세계 민방위의 날(World Civil Defence Day)
반응형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