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3월 8일) - 소소한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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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여성가족부

 

안녕하세요. 소소한 H입니다.

 

오늘은 UN에서 1975년에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의 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시는 분들은 많이 없으실 겁니다. 저도 이번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처음 알았으니까요.

 

그럼 세계 여성의 날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1909년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치적 행사로 시작되었고,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으며, 1975년부터 유엔에 의하여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만들어진 배경.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여 1909년 2월 28일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이 미국에서 선포되었고, 이에 영감을 얻은 유럽에서는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 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 킨 이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기 위한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이에 힘입어 이듬해인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외치는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바로 이때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외쳤던 것이다.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했다.

 

이미지출처 SBS


몇몇 국가에서 이 행사는 원래의 정치적 색채를 잃고, 어머니날이나 밸런타인 데이처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사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계 여성의 날은 여전히 여성의 자유, 참정권, 인권 등의 정치적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국제적인 여성들의 투쟁에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자각을 잘 드러내 주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으로 인해 서유럽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기존 사회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이제 집안에서 가사 노동만을 담당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들에게 남성들보다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고,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이 1857년 미국의 뉴욕에서 처음으로 폭발한다. 이때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고 이는 곧 경찰에게 공격받고 해산되었다. 2년이 지난 1859년 3월, 이 여성들이 최초로 그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1908년 2월 28일 미국에서 여성들의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15,000명이나 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뉴욕 시로 행진하였다.

이후 1910년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 여성회의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911년 3월 19일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개최되었다. 1848년 3월 19일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초기의 성공과 정착.

제2인터내셔널에서 결정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이 날을 전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는 여성의 선거권을 중심으로 하여 여성의 각종 권리를 옹호하는 선전물들이 쏟아졌고, 행사 당일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덴마크 등지에서 약 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였다.

그날 이후 유럽과 미국 등지의 각국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운동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1912년 5월 뉴욕의 5번가에서는 1만 5천 명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주장하는 시위를 펼쳤다. 1913년부터 3월 8일로 변경된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은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주변 국가들까지 끌어들이는 성과를 보인다. 특히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1913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에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모든 정치집회가 금지된 제정 하에서도 끈질기게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이어나갔다.

 

러시아 2월 혁명 및 그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여성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주요 모토로 내걸던 세계 여성의 날은 급작스런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혁명이 아닌 개혁 정책을 추구했던 서유럽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제 연대적 색채가 강한 세계 여성의 날을 공공연히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은 노르웨이 등지에서 계속 명목을 이어나간다.

특히 러시아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제정 폐지라는 성과를 거둔 1917년의 러시아 2월 혁명에 큰 공헌을 한다. 바로 1917년 3월 8일에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페트로그라드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의 공헌으로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쫓겨났으며,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주장은 뒤이은 10월 혁명에서의 여성들의 평등권 신장의 밑거름이 된다.

이후 1927년 러시아에서 스탈린이 권력을 쥐고 국제 공산주의를 사실상 부인한 이후,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가 쇠퇴하였고, 이에 따라 세계 여성의 날도 예전과 같은 면모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1960년대의 여성주의 운동의 성장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은 다시 예전처럼 전 세계 여성 노동자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면모를 이어나가고 있다.

 

유엔과 세계 여성의 날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 동안 유엔은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77년 12월 유엔 총회는 각 국가들이 자신들의 역사적이고 국민적인 전통에 따라서 1년 중 어느 하루를 정해 그 날을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로 준수할 것을 선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총회는 이 결의를 통해 평화와 발전을 위한 노력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고, 차별의 종식 및 여성의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를 위한 지원의 증진을 촉구했다.

 

각 국의 세계 여성의 날 상황

■ 국가공휴일  여성에게만 휴일  공휴일 아닌 기념일

 

한국에서의 세계 여성의 날

여성의 날은 1920년 일제 강점기에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박인덕, 김활란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하면서 조선에 정착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여성 행사를 감시하였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탄압하지 못했고, 이는 1945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해방 이후 여러 가지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세계 여성의 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1회 한국 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본격적인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 여성노동자회 협의회, 전국 여성노조, 민주노총 및 각종 여성주의 단체들이 주최 및 후원하는 전국적인 정치·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18년에 "여성의 날"이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북한에서의 세계 여성의 날

굉장히 의외지만, 북한에서는 남한과는 달리 이 날이 꽤 인지도가 있는 날이라고 북한이탈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유래된 날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만 역설적인 건 이 날도 그렇고 5월 1일도 그렇고 미국이 기원이라는 것 실제로 북한에서는 3.8 국제 부녀절이라고 부르는 이 날 만큼은 여성이 굉장히 대우받는다고 한다. 평양에서는 옥류관을 비롯한 유명 음식점에서 여성 고객을 위한 특별 메뉴나 서비스를 내놓기도 하며, 이런저런 예술단들이 축하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미지출처 서울신문


어느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이날 여자들은 회사에 출근은 하지만 집에서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한다."면서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고 아침 밥상까지 남편이 차려준다."라고 말했다. 일부는 일부러 이날까지 빨래를 잔뜩 쌓아놓기도 한다는 후문. 직장에서도 남자 직원들이 이날만큼은 여성 직원들에게 하다 못해 유리 양말 하나라도 선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2012년 국제 부녀절은 김정일 사후 100일 동안 일체의 음주가무를 자제해야 했음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성대하게 관련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이 날 평양대극장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중심으로 한 축하 공연이 열렸는데, 이 공연은 김정은이 직접 보러 왔기 때문에 공연 직후 전국에 녹화 방송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무대에서도 '장군님 못 가십니다'며 울고불고하던 예술인들이 여유 있게 미소까지 띠고 연주하는 진풍경을 보여줬고, 객석에서 리춘히나 오극렬 같은 유명 인사들이 춤을 추거나 무대에 불려 나와 노래를 부르는 등의 모습도 연출되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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