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019년 - 강감찬 거란군 맞아 귀주 대첩 승리.
1848년 -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미국 상원이 비준.
1898년 - 독립협회, 첫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다.
만민공동회 또는 관민공동회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음에는 사교 모임 형태였으나 연설과 강연, 웅변, 조정에 대한 민중의 건의사항 등을 채택하고 공개적으로 결정하는 모임으로 확대되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었다.
1898년(광무 2) 3월부터는 러시아, 프랑스 등 열강의 이권 개입을 반대하는 등 제국주의 침탈 반대 운동을 펼쳤으며, 점차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1898년 10월부터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익명서 사건 이후 1898년 12월 정부의 탄압으로 무산되고 만다. 1899년까지 존속하다가 폐지되었다.
1946년 -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이 창립하다.
1952년 - 독일 통일을 위한 스탈린 각서가 발간됨: 통일의 기본조건으로 독일의 중립성을 요구하다.
1959년 - 티베트에서 반중국, 반공산주의 봉기가 일어나다.
1962년 - 대한민국과 스페인이 수교하다.
2008년 - 2008년 티베트 소요 사태가 시작됐다.
2011년 - 중국 윈난 성에서 지진이 발생하다.
2017년 -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으로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 의혹(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선 실세 의혹, 대기업 뇌물 의혹 등)을 사유로 국회에서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이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대통령 탄핵 소추를 발의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한 일을 말한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 10분에 탄핵소추 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7시 03분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 의결서를 받는 동시에 헌법상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되었다. 이로 인해 앞과 같은 시각부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 안을 인용하여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은 이 판결이 처음이다.
문화
탄생
장인환(1876년 3월 10일 ∼ 1930년 5월 22일)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대동 군(현 평양직할시) 태생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자랐다. 숭실학교를 졸업한 이후, 1905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대동보국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조선통감부와 밀착해 있던 더럼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에 격분하여 그를 저격하기로 결심했다.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으로 떠나는 길의 스티븐스를 공격하려 하던 중 같은 목적으로 대기하던 전명운이 먼저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그는 권총 세발을 발포하였는데,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잘못 맞았고 나머지 두발을 맞은 스티븐스는 중상을 입어 이틀 후 사망했다.
한인 사회에서 선임해 준, 당시 그의 재판을 맡은 네이선 코플런(Nathan Coughlan) 변호사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애국적 정신병(patriotic insanity) 이론을 근거로, "이 사건은 일종의 정신 질환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므로 범죄가 될 수 없다" 고 항변했다.
그는 경찰과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서를 제출하였고,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뭐요? 수십만 명이 그의 계획 때문에 죽어갔소. 그러니 나는 내 조국을 위해 그를 쏜 것이요.
나는 투옥되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순국하고 싶소. 나는 조국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했고 법이 나를 어찌할지는 관심이 없소.
재판 결과 금고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0년 만인 1919년 가출옥하였고, 1927년 귀국하여 결혼을 하였으나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이후 병고에 시달리다가 1930년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다.
사망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이며, 본관은 순흥, 호는 도산, 종교는 개신교이다. 구한 말 만민공동회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배워서 익히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상하이에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또한 실력양성론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하여 1899년(광무 2년) 점진학교, 1908년(융희 2년) 대성학교, 1926년 중국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하였다.
대한의군 특파 독립 대장 겸 아령 지구 사령관을 지낸 항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선생과는 동성동본 친족척 이기도 하며 1938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간경화를 비롯한 폐렴과 만성기관지염 및 위하수증· 복막염 및 피부염과 소화불량 등의 합병증으로 타계한 그는 생전에 흥사단, 대한인 국민회 등 재미한인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1919년 4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주도하였다. 1921년부터는 임시정부 창조론과 개조론이 나뉠 때 개조론을 주장하였으며, 국민대표자회의가 강제 해산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미국의 한인 교포사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박용만, 이승만, 서재필 등과 경쟁, 갈등관계에 있기도 했다.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 이후 일본 제국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형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과 간경화, 폐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사망한다.
기념일
2020/03/07 - [오늘의 인물 이야기]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