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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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521년 -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하다.

1815년 - 네덜란드 왕국의 성립.

1935년 -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독일이 재무장하도록 지시하다.

1962년 - 포르투갈령 고아, 인도에 병합.

1962년 -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정치활동정화법 공포.

1968년 - 베트남 전쟁: 미군이 베트남 미라이 마을에서 민간인 347명을 학살하다.미군의 미라이 마을에서의 만행은 미국내 반전운동과 베트남의 반미운동을 더욱 뜨겁게 했다.

1969년 - 강원도 주문진에 북한 무장공비 침투.

1978년 - 당시 이탈리아의 총리로 임명된 알도 모로가 로마에서 극좌단체인 붉은 여단에 납치되다. 알도 모로총리는 59일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1994년 - 대한민국 정부, 생수시판 전면 허용.

2008년 -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의 용의자 정성현이 검거됐다.

2008년 - 진보신당 창당.

2014년 - 크림 공화국에서 러시아와의 합병을 위한 주민 투표가 진행되었다.

 

문화

1923년 - 소파 방정환이 소년운동가 강영호와 일본 유학생들과 함께 색동회 설립을 준비하다.

1989년 - 프랑스군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건립.

2001년 - 이규혁,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m 세계신기록 수립.

2003년 -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방한.

2006년 - 대전 도시철도 1호선 개통. (1단계,판암 ~ 정부청사 구간)

2012년 - 일본, 신칸센 300계 전동차가 도쿄발 신오사카행 노조미 329호(도카이도 신칸센), 신오사카발 하카타행 노조미 609호(산요 신칸센)를 마지막으로 도카이도·산요 신칸센에서 완전히 은퇴하다.

 

탄생

1751년 - 미국의 제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1789년 - 독일의 물리학자 게오르크 옴.

1799년 - 식물학자이자 최초의 여성 사진가 안나 앳킨스

1876년 - 한국 최초의 여자 미국 유학생이자 여의사 에스더 박

1877년 - 이란의 팔레비 1세.

1915년 - 일본의 수학자 고다이라 구니히코.

1922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대한극장 설립자, 정치인 국쾌남

1925년 - 멕시코의 화학자, 경구피임약 발명가 루이스 미라몬테스.

1939년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카를로스 빌라르도.

1940년 - 독일의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 / 대한민국의 배우 김무생.

1941년 -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42년 - 미국의 활동가, 작가 아니타 호프만.

1945년 - 대한민국의 시인 나태주

1947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백윤식.

1949년 - 미국의 배우 에릭 에스트라다.

1953년 - 미국의 프로그래머 리처드 스톨만. / 프랑스의 배우 이자벨 위페르.

196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미영.

1965년 - 대한민국의 가수, 건축가 양진석.

1968년 - 대한민국의 배우 윤동환.

1971년 - 대한민국의 배우 박용우.

1975년 - 영국의 배우 시에나 길로리.

1978년 - 미국의 배우 브룩 번즈. / 대한민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규혁.

1979년 - 대한민국의 배우 현우성.

1980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하나 (클레오).

1981년 - 대한민국의 배우 채민서.

1982년 - 미국의 야구 선수 브라이언 윌슨.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민서.

1986년 -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다카하시 다이스케.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이지연.

198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손용석.

1988년 - 캐나다의 쇼트트랙 선수 제시카 그렉.

198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소민.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이진아.

1993년 - 대한민국의 전 가수 효은.

 

사망

37년 - 로마 제국 2대 황제 티베리우스.

455년 -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

1608년 - 조선 14대 국왕 선조.

1898년 - 영국 화가 오브리 비어즐리.

1964년 - 대한민국의 관료 이근직.

2012년 - 일본의 철학가 요시모토 타카아키.

2018년 - 대한민국의 성우 권희덕.

2019년 - 모리타니의 군인 모하메드 마무드 울드 룰리.

 

음악

고교 시절이었던 1988년 록 음악 밴드 '철장 미'의 보컬리스트로 첫 데뷔하였고 대학 시절이었던 1991년 록 음악 밴드 '피노키오' 리드 보컬리스트로 정식 데뷔하여 서정성 가득한 록발라드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대중의 입맛에 충실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음악적 배경에는 헤비메탈 그룹 활동을 통해 다져진 다양한 무대 경험, 열정 등 음악적 견고함이 있다.

특히 K2 김성면은 애절하고 가슴 저린 특유의 감성적 보컬과 4옥타브를 넘나드는 시원한 보이스, 두 가지 매력을 지닌 장점으로 발라드 팬층에서부터 록을 선호하는 층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철장 미의 리드보컬로 활동하던 김성면과 스래시 메탈 밴드인 아발란시의 기타리스트로 재적 중이던 테크니션 이태섭은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 메탈 앨범인 에서 처음으로 조우했다. 이후 김성면은 그룹 피노키오에서 활약하며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히트곡을 배출하며 샤우팅 창법에서 한결 부드럽고 대중적인 보컬 스타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94년 그는 이태섭과 함께 K2를 결성하고 작곡가로서도 역량을 드러내며, 손지창의 히트곡 ‘사랑하고 있다는 걸’과 더 블루의 ‘친구를 위해’등을 직접 작곡, 록 발라드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선율의 탐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K2의 음악은 김성면의 하이 톤 보이스를 앞세우며 극적인 절정 부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인기 레퍼토리는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잃어버린 너', '소유하지 않은 사랑', '유리의 성'등이 그 드라마틱한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곡들이다.

그러나 1집 에서 보컬의 뒤를 든든히 받쳐준 이태섭이(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정경화의 나에게로의 초대 같은 노래로 알려짐) 자신의 그룹 루트(The Root)를 결성하기 위해 팀을 떠나면서 K2엔 김성면 혼자 남게 됐다. 하지만 그는 팀 명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 K2라는 이름 하에 곡을 발표했다.

다행히 곡에 대한 감각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2집 앨범은 거의 전곡을 작사, 작곡을 했다. 또한 그 흔들리지 않은 보컬 소화력은 1997년에 공개된 두 번째 앨범에 실린 트랙들에서 엿볼 수 있다. 많은 지지를 얻은 애절한 록발라드 '소유하지 않은 사랑'외 에도 웅장한 스케일의 2집 앨범의 백미 '그들만의 슬픔', 펑키한 느낌의 록 'Corner of my mind'등의 노래들은 바래지 않은 노래 실력을 입증했고, 록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록의 변주를 보여주며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99년 세 번째 음반에서는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전작의 부담을 덜고 조금 더 노래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샤우팅보다는 절제미를 추구하며.'그녀의 연인에게', 김민종과 듀엣으로 부른 '널 위한 나', 가 연속으로 주목받았으며, 절제와 시원한 샤우팅이 완벽히 녹아 있는 '유리의 성'은 지금도 록 마니아의 애창 넘버로 기억되며 K2는 록발라드 전문 팀으로 입지를 굳혔다.

한 번만 들어도 K2의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음악은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단점이자 동시에 강점이다. 조금은 도식적인 그 패턴이 지금까지 K2라는 이름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못하게 한다. 이후 2000년부터는 다시 노바소닉, 이현석 밴드 등과 록 페스티벌 등을 함께 하며 방송보다는 콘서트 위주의 활동만 해오고 있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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