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2월 15일

반응형

사건

687년 - 교황 세르지오 1세, 84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함.

1950년 - 흥남 철수 작전 시작.

철수 직후, 폭파되는 흥남부두를 관측하는 USS begor호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개입.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동부전선의 미국 10(X) 군단과 대한민국 1군단을 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선박편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킨 작전이다.

대한민국 국군과 국제연합군이 38선을 넘기 시작하자 북한이 미리 평양에서 철수하고 일부가 중공군 국가 안으로 들어가 중공군 도움을 요청하고 중공군 역시 한국전쟁에 개입을 할 때부터 시작했는데 중공군이 드디어 11월 27일 제2차 청천강 전투와 장진호 전투를 일으켜 국제 연합 사령부는 중공군의 공세로 인해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8일 흥남 철수 지시를 내렸다. 이어 12월 15일 미국 1 해병사단을 시작으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철수가 이뤄졌다. 장진에 머물렀던 미국 1 해병사단도 12월 24일에 마지막으로 흥남에서 철수하였다. 평양은 이미 12월 4일에 대한민국 국군이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12월 6일에 북한이 평양을 수복하였다. 


● 장진호 전
미국 전쟁 역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전투에서 미국 1 해병 사단은 자신의 10배에 달하는 12만의 중국군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중국군 12만 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 흥남 철수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후퇴작전이 1.4 후퇴의 시작이었다.

●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철수 작전
김백일 1군단장과 10(X) 군단 소속의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은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피난민까지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 철수 작전 마지막에 남은 상선이완전히 되었고 온양호는 가장 마지막에 흥남부두를 떠난 배가 되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의 결단에 따라 선적했던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만 4천여명을 태워 남쪽으로의 철수에 성공함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절박한 피난길 중에 사람 많아 비좁은 배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명의 인명을 구한 6명의 영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 결과

흥남 철수 작전에서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의 장병 100,000명과 차량 17,000대, 피난민 약 100,000명과 350,000t의 군수품을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61년 - 이스라엘 법정이 독일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게 교수형을 선고함
 

1970년 - 대한민국 남해안에서 남영호 침몰 사고 발발로 326명이 사망함.

남영호의 평소 운항 모습

남영호 침몰사고는 제주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남양상선 소속의 남영호가 1970년 12월 15일 거문도 동쪽 해상에서 침몰한 사고이다.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326명이었으며, 재산 피해는 선체와 화물가격을 포함해 1억 700만원에 달했다. 남영호는 남영해운 소속의 선박으로, 1967년 12월 경남조선회사에서 제작, 길이 43m에 폭 7.2m, 362톤급이며, 1400마력에 1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1968년 3월 5일 처음 부산과 제주 사이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으로서의 운항을 시작하였고, 승객 정원은 295명(1등 20명, 2등 38명, 3등 237명), 선원은 19명이었다. 사고 후의 조사에서 승객 정원은 321명, 적재 정량은 130톤으로 밝혀졌다. 사고가 발생한 1970년 12월 14일은 12일부터 제주 일원에 발효된 폭풍주의보가 해제된 직후였다. 남영호는 14일 17시 승객 158명과 화물 150톤을 싣고 출항하였고, 성산포에 기항하여 승객 98명을 더 태우고 21시 40분에 부산을 향해 출항하였으며, 15일 새벽 1시 25분에 제주(현재는 여수) 상백도 동쪽 25마일 해상에서 침몰, 실종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보도 내용과는 달리 실제 승객은 338명, 화물은 540톤을 넘었음이 이후의 조사로 밝혀졌다.


1976년 - 사모아, 유엔 가입.

1978년 - 미국·중화인민공화국 국교 정상화 발표.

1993년 -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2011년 - 대한민국 국방과학연구소가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궁을 독자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2013년 - 이집트, 이스라엘 등 중동 지역에 70년만에 폭설이 내려 4명이 사망, 약 9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2014년 - 호주 시드니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소속 무장괴한으로 추정되는 인질극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이슬람 단체의 테러라고 여겼으나 곧 범인 모니스의 단독범행으로 판명되었다. 인질 포함 3명이 사망했다.
콩고 탕가니카 호수에서 선박이 전복돼 130여명이 사망하였다.

 

문화

1893년 -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초연.

1954년 -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방송 기독교방송 개국.

1989년 - 대한민국에서 1990학년도 학력고사 실시


1995년 -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식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1995년 12월 15일에 창단한 대한민국의 K리그1 소속 프로축구단이다. 연고지는 경기도 수원시이며, 홈 구장은 '빅버드'라 불리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이다. 수원은 1995년 삼성전자가 수원시와 연고 협약을 맺고 K리그의 9번째 구단으로 출범했다. 수원은 1996 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해 정규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1998년 정규리그에서 첫 우승에 성공했다. 1999년에는 전관왕을 달성하며 위용을 떨쳤다. 2014년 4월 1일부터 구단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같은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이관됐으며, 삼성전자는 모기업에서 스폰서로 전환하여 구단의 운영과 지원이 이원화됐다. 이는 스포츠 전문 기업이 아닌 제조업의 삼성전자에 속해 그동안 효율적이지 못한 구단 운영의 한계에서 벗어나 그동안 수원 마케팅을 담당한 삼성그룹 계열사 제일기획에서 운영함으로써 그동안 성적 위주의 운영에서 벗어나 스포츠사업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꿔 구단의 운영과 지원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이원화 방식을 채택한 것과 삼성스포츠단 재편으로 인해 삼성스포츠단 산하 스포츠팀을 전부 제일기획에서 관리할 예정에 이뤄진 조치이다. 이와 함께 법인명도 삼성전자축구단에서 수원삼성축구단으로 바뀌었다.


 
2000년 - 서울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응암역구간 개통

2001년 - 강원도 지역민방 네트워크 가맹국인 GTB(현 G1) 텔레비전 방송 개국.

2005년 - 제2진도대교 개통.

2010년 - 경부선 서울 ~ 동대구간 새마을호 운행개시. 경전선 삼량진~마산 구간 복선전철 개통 및 KTX 운행 개시.

 

탄생

37년 -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
 
130년 - 로마 제국의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

1832년 - 프랑스의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

1852년 -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

1859년 - 러시아의 내과, 안과 의사 자멘호프.

1861년 - 권동진, 한국의 독립운동가.

 
 
일본 망명 시절의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오세창, 손병희, 권동진

권동진는 조선 말기의 무신, 군인이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아호는 애당, 우당이며, 천도교에서 받은 도호는 실암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조선 말기에 함안 군수, 육군 참령으로 있다가 그 뒤, 개화당에 들어가 구한말의 개혁운동에 참가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손병희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한 뒤, 일본 체류 중 손병희의 권고로 천도교에 입도하였고, 도사가 되었다. 1895년 10월 을미사변 당시에는 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후 1907년까지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남궁억의 대한협회 설립에도 참여하여 동 실업부장을 역임했다. 1919년 3․1 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을 지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3년간 수감당했다. 출옥 후 1927년에는 신간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뒤에 광주 학생 운동에 관련되어 다시 1년간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신한민족당 당수가 되어 우파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887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김병로.

1892년 - 미국의 사업가 진 폴 게티.

1905년 - 대한민국의 극작가, 연극인 유치진.

1923년 -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194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운태.

1955년 - 대한민국의 지방자치행정가 겸 대학 교수 한현택.

1962년 - 대한민국의 여성청년사회운동가 겸 의회정치가 이경옥.
 
1963년 - 대한민국의 배우 황신혜.

1965년 - 대한민국의 신문 기자, 대학 교수 강미은.

1970년 - 대한민국의 축구인 노상래.

1972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정재.

1974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장문석.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승준.

1985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주형.

1986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나현주, 대한민국의 아이돌 가수 김준수

1992년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제시 린가드

 

사망

1675년 -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890년 - 미국의 인디언 시팅 불.

1909년 -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및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

1944년 - 독일계 미국인, 트럼본 연주자이자 스윙 재즈의 대가 글렌 밀러

1946년 - 조선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규완.

1963년 -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 역도산

역도산(1924년 11월 14일 ~ 1963년 12월 15일)은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이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본명은 김신락, 귀화 후 이름은 모모타 미쓰히로이다.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고, 나가사키현 오무라의 부농에게 양자로 들어가 모모타 미쓰히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50년 스모 선수. 리키시가 되면서 역도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모에서 은퇴하고, 1951년 10월 28일부터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다. 1953년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창설했다. 1954년 2월에는 미국 샤프 형제를 초청해 태그매치를 벌였다. '빨간 머리 파란 눈, 가슴·배에 텁수룩하게 털이 난' 샤프 형제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인을 때려잡은 미국인의 전형'이었고, '미일전쟁'으로 연출된 첫 싸움에서 역도산은 가라테촙으로 상대를 때려눕혔다. 그 뒤 역도산은 ‘반칙을 일삼는 외국 선수에 맞서 최후에 승리하는 일본 영웅 레슬러’로 각인됐다. 그의 제자들인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자이언트 바바 등의 여러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1963년 12월 8일 심야에 도쿄 도심의 나이트클럽 '뉴라틴쿼터'에서 폭력단 스미요시 일가 단원 무라타 가쓰시와 말다툼을 벌이다 무라타의 칼에 복부를 찔려 부상을 입었다. 수술 후에 생긴 화농성 복막염으로 12월 15일 향년 40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당시 역도산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의료과실이라는 주장과 함께 음모론도 대두됐다. 2003년 부인인 다나카 게이코는 역도산의 사망이 의료사고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사고임을 입증하는 부검결과가 공개되지 않아 역도산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1966년 - 미국의 영화 제작가 월트 디즈니.


1991년 - 소련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

2010년 - 미국의 영화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2018년 - 에티오피아의 제2대 대통령 기르마 월데기오르기스.
 

 

기념일

자멘호프의 날(Zamenhof Day): 에스페란토 커뮤니티(International Esperanto Community)

왕국의 날(Kingdom Day): 네덜란드

순직 언론인 추모일: 러시아

 

반응형

'보관함 > 오늘의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12월 19일  (8) 2019.12.19
오늘의 역사 12월 18일  (4) 2019.12.18
오늘의 역사 12월 17일  (2) 2019.12.17
오늘의 역사 12월 16일  (6) 2019.12.16
오늘의 역사 12월 14일  (6) 2019.12.14
오늘의 역사 12월 13일  (4) 2019.12.13
오늘의 역사 12월 12일  (8) 2019.12.12
오늘의 역사 12월 11일  (4) 2019.12.11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