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2월 3일 - 소소한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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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451년 - 메흐메트 2세가 오스만 제국 술탄의 지위를 물려받다.

1946년 - 통화 사건이 일어나다.

중화민국 지린성 퉁화시

1946년 2월 3일 만주의 퉁화에서 봉기를 일으킨 일본인이 중국 공산당 군대에 진압된 사건으로 퉁화 2・3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이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국가 만주국도 8월 18일에 멸망했다. 그러면서 만주는 다시 중국의 영토가 되어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8월말 만주 전역을 점령한 소련군은 만주에서 군정(軍政)을 실시했다. 소련은 중소우호동맹조약에 따라 3개월 이내에 국민당 정부에 통치권을 반환하고 철수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1946년 5월까지 철수하지 않고 군정을 이어갔다.

만주국이 멸망한 뒤에 퉁화는 옛 만주국 관리이던 쑨겅샤오가 국민당 퉁화지부의 서기장이 되어 그대로 통치를 이어갔으며, 만주국 군대와 경찰도 국민당 정부군으로 소속만 바뀌어 유지되었다. 그러나 1945년 9월 22일 공산군이 국민당 정부군을 몰아내고 퉁화를 장악했다.

중국 공산당 군대는 일본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피난민들을 옛 관동군 사령부에 수용했다. 그러자 일본인들의 불만이 높아졌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옛 관동군 비행부대와 전차부대가 퉁화로 이동해오자 쑨겅샤오 등의 국민당 세력과 손잡고 공산당 군대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일본인들의 불만은 1945년 12월 23일에 열린 ‘퉁화 일본인 거류민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1946년 1월 10일에 일본인 거류민회의 중심인사 140여 명이 중국 공산당 군대에 연행되어 구금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결국 퉁화의 일본인들은 후지타 사네히코 대좌를 비롯한 옛 관동군 장교들의 지휘를 받아 2월 3일 새벽에 봉기를 일으켰다.

일본인들은 병력을 중대 단위로 나누어 경찰서·관공서·사령부 등 중국 공산당 군대의 주요 거점들을 습격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군대가 이미 일본인의 습격에 대비해 중화기를 배치해둔 상태였으므로, 일본인들의 봉기는 수많은 사상자만 낳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진압되었다.

봉기가 진압된 뒤에 16세 이상의 일본인 남성들은 모두 구금되었다. 일부는 중국 공산당 군대에 징병되거나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퉁화 사건 이후 중국 공산당은 방침을 바꾸어 일본인들의 귀국을 허용하기도 했고, 이에 따라 1946년부터 1947년까지 관리와 군인을 제외한 민간인들의 단계적 귀환이 이루어졌다.


1977년 - 조원 일식집 화재 사고가 일어나다.

1985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사제가 요하네스버그 성공회 주교로 임명됐다.

1989년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파라과이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 호주제 규정 민법 781조 1항 및 778조의 헌법불합치를 판결내렸다.

2009년 - 일본의 활화산 아사마 산이 폭발했다.

 

문화

1908년 - 그리스 축구 클럽 파나티나이코스 FC 창단

2016년 -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인천국제공항역 ~ 용유역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탄생

1338년 - 프랑스의 왕비 부르봉의 잔.

1774년 - 독일의 수학자 카를 몰바이데.

1795년 - 페루와 볼리비아의 대통령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

1807년 - 미국의 군인 조지프 E. 존스턴.

1809년 -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1821년 - 영국의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

1857년 - 덴마크의 식물학자 빌헬름 요한센.

1868년 - 일본의 정치가 미즈노 렌타로.

1874년 - 미국의 작가,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

1887년 - 오스트리아의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1892년 - 스페인의 정치인 후안 네그린.

1894년 - 미국의 화가 노먼 록웰.

1898년 -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르 알토.

1899년 - 중국의 작가 라오서.

1904년 - 대한민국의 화가, 미술평론가 김용준. / 이탈리아의 작곡가 루이지 달라피콜라.

1909년 -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김용제. / 대한민국의 학자 김삼순. /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

1918년 - 미국의 육상 선수 헬렌 스티븐스.

1927년 - 대한민국의 비구니 승려 대행.

1943년 - 미국의 배우 블라이드 대너

1947년 -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 / 미국의 가수 멜라니 사프카.

1948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준양. / 동티모르의 성직자 카를루스 필리프 시메느스 벨루.

1951년 - 멕시코의 전 수영 선수 펠리페 무뇨스. / 부르키나파소의 정치가 블레즈 콩파오레.

1956년 - 미국의 배우 네이선 레인.

1958년 - 미국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1960년 - 독일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요아힘 뢰프.

1961년 -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정치인 장향숙.

1966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응경. / 대한민국의 작가 표윤명.

1967년 - 대한민국의 성우 김나연.

1969년 - 네덜란드의 왕자 콘스탄테인.

1971년 - 대한민국의 가수 현진영. / 대한민국의 배우 홍석천.

1972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윤도현. / 에스토니아의 전 축구 선수 마르트 폼.

1973년 - 대한민국의 래퍼, 방송인 이상민 (룰라).

1974년 - 대한민국의 방송인 김제동.

1976년 - 대한민국 야구 선수 김동주. / 오스트레일리아의 배우 아일라 피셔.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채리나 (룰라).

1981년 - 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김종대

1982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허용.

1983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곽용섭. / 중국의 바둑 기사 구리

1984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준. / 대한민국의 재즈 가수 유사랑.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상철. /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사드 알하르티.

198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조규현. / 일본의 모델, 탤런트 미야자키 레이카.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흐레호리 판 데르 빌.

1989년 -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의 가수 지아.

1990년 - 자메이카계 미국 가수 션 킹스턴.

1991년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염혜선.

1993년 - 대한민국의 일반인 김인영

1995년 - 일본의 배우 츠치야 타오.

199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유설.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가현 (드림캐쳐).

 

사망

1451년 - 오스만 제국의 제6대 술탄 무라트 2세.

1468년 - 독일의 활판인쇄술 발명가 구텐베르크.

요하네스 쿠텐베르크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 추르 라덴 춤 구텐베르크(1398년경 ~ 1468년 2월 3일)는 약 1440년 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사용한 독일의 금 세공업자이다. 본명은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이고, 구텐베르크는 통칭이다. (영미권에서는 구텐버그라고 발음한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활자 설계, 활자 대량 생산 기술을 유럽에 전파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업적은 이런 기술과 유성 잉크, 목판 인쇄기 사용을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활자 제작 재료로 합금을 사용하고, 활자 제작 방식으로 주조를 채용하였다.

영국 엑슬리에서 만든 구텐베르크 전기에 의하면, 구텐베르크는 1397년 아니면 1398년에 마인츠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집안은 하급 귀족으로 마인츠를 지배하는 대주교 밑에서 돈을 찍어내는 금속 세공 관리로 일했기 때문에, 구텐베르크는 주물, 압축 등의 금속 세공 기술과 지식을 익혔다. 당시 유럽에서는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 있었는데, 다툼에서 지면 추방되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마인츠 입성 후, 구텐베르크의 부친도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어 슈트라스부르크에 망명하였다.(1411년) 1428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슈트라스부르크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전기 작가들은 그의 직업을 상인, 장인 등으로 추정한다. 다시 금속 활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1444년경 귀향하였다.1448년 마인츠에 인쇄소를 개업한 그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를 찍어 팔았다. 이후, 고딕 활자를 사용하여 최초로 36행의 라틴어 성서, 즉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하였다. 1453년경 다시 보다 작고 발전된 활자로 개량한 후, 2회에 걸쳐 42행의 구약 성서를 인쇄하였는데, 이 책에서 나타난 우수한 인쇄 품질로 그는 호평을 받았으며 이것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쿠텐베르크 불가타 성서. 제1권 구약성서


구텐베르크는 활판 인쇄술로 불가타 성서(구텐베르크 성서)를 대량 인쇄하여, 성직자와 지식인들만 읽을 수 있었던 성서를 대중화시켰다. 당시 성서를 비롯한 책들은 필사본이라 수량이 적어서 가격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활판 인쇄술이 서양에 등장하면서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쉽게 책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 생산된 책 중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작품도 있었고 이것은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외에 활판 인쇄술은 대중 매체의 한 종류로서의 신문이 탄생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붙였다. 이 글은 활판 인쇄술에 의해 대량으로 인쇄되어 두 주 만에 독일 전역에, 두 달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논리를 널리 퍼트려 종교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고 할 수 있다.


1618년 - 조선의 문신 김극효.

1881년 - 영국의 조류학자 존 굴드.

1901년 - 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1924년 - 미국의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우드로 윌슨.

1959년 - 락앤롤 가수 버디 홀리

1966년 - 대한제국 순종의 두 번째 황후 순정효황후.

순정효황후 윤씨(1894년 양력 9월 19일(음력 8월 20일) ~ 1966년 양력 2월 3일)는 대한제국의 황후이자 일제 강점기의 이왕비, 이왕대비였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계후로 본관은 해평이다. 박영효, 이재각 등과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 인사인 윤택영의 딸이다.

1894년 9월 19일(음력 8월 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에 당시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1907년 1월 24일에 12살의 나이로 황태자비로 책봉되었고, 이때 아버지 윤택영과 서시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풍설이 돌았다. 그 해 부군인 황태자 순종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그녀도 황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는데,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에 의해 피탈되어 멸망을 맞게 되었다.

순종의 지위가 이왕으로 격하됐으므로 그녀도 이왕비가 되어 창덕궁의 대조전에 머물렀으며 1926년 4월,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사망하자 대비로 불리며 창덕궁의 낙선재로 거처를 옮겼다.

해방 이후에는 1947년 신적강하 조치되어 이왕대비에서 평민으로 전락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궁궐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조선인민군을 당시 5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호통을 쳐서 내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순정효황후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걸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1년 대한민국의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전전하던 끝에 1953년 한국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되자 바로 환궁하려 하였으나, 제1공화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순정효황후에 대한 민심을 두려워하여 환궁을 방해하였기 때문에, 정릉의 수인제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59년에는 비구니로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이듬해 1960년, 전 구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의 노력으로 환궁에 성공하였고,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 및 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독서와 피아노 연주로 소일하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황실을 이끌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평생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그 실력은 타임지를 읽어낼 정도였다고 전한다.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에서 심장마비로 73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1973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교육자 여운홍.

1975년 - 이집트의 가수 움 쿨숨.

1981년 - 한국의 종교인, 교육자 류영모.

1997년 -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

2006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이준구.

2006년 - 이탈리아의 음악가 로마노 무솔리니.

2009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최형규.

2011년 - 프랑스의 영화배우 마리아 슈나이더.

2016년 - 미국의 가수 모리스 화이트

2018년 - 미국의 교육학자 빌 틸

 

기념일

세츠분(節分):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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