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참전국가 사망자 수,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유

반응형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해방 직후 우리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미국은 남한, 소련은 북한을 또다시 점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끝나고 남과 북은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후 북한은 소련과 중국을 설득하여 한반도 적화통일을 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를 한 것이며,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기습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침공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전쟁이기 때문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53년 7월 22일 체결된 한국 휴전협정에 따라 세계대전은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크고 작은 유무형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2020년은 6.25 전쟁 70주년 되는 해이 기도하다. 오늘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가와 사망자 수, 그리고 왜 한국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쟁이다. 북한은 전쟁 전 중국과 소련의 협조와 지지를 얻은 김일성이 남침으로 시작되었고, 1950년 9월, 우리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게 된다.

 

 

한국전쟁 교전국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는 다음과 같다.

유엔군 국가명
전투 파병국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콜롬비아, 터키, 태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어
프랑스, 에티오피아 제국, 그리스 왕국, 필리핀, 남아프리카 연방
의료 지원국 인도, 이스라엘,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서독
물자 지원국 과테말라, 도미니카 공화국, 라이베리아, 레바본,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모나코, 바티칸 시국, 베네수엘라
버마 연맹,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프랑코 정권, 시리아 공화국,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아이티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우루과이, 팔레비 왕조, 이집트 왕국, 인도네시아, 일본
자메이카, 중화민국, 칠레, 캄보디아, 쿠바, 파나마, 파키스탄, 페루, 헝가리
지원 의사 표명국 니카라과, 볼리비아, 브라질

 

공산군으로 참전한 나라는 다음과 같다.

공산군 국가명
전투 파병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소련(러시아)
의료 지원국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폴란드 인민공화국, 헝가리 인민공화국, 루마니아
기타 지원금 몽골 인민공화국(말 7378필 지원), 인도

 

유엔군과 공산군의 병력 비교

병 력
유엔군 사령부 공산군
총계: 1,719,579 명 총계: 2,150,00 명 이상
대한민국 국군, 1,090,911명 조선인민군 800,000 + @
미국 480,000명 중국인민지원군 1,350,000 명
영국 56,000명 소련군: 26,000 명
프랑스 3,412명  
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뉴질랜드 3,794명  
캐나다 25,687명  
네덜란드 5,322명  
필리핀 7,420명  
터키 14,936명  
콜롬비아 5,100명  
베리게벨기에 3,498명  
태국 6,326명  
그리스 왕국 4,992명  
에티오피아 제국 3,518명  
남아프리카 연방 826명  
룩셈부르크 83명  
의료부대
노르웨이 623명  
이탈리아 128명  
스웨덴 1,124명  
덴마크 630명  
인도 627명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 비교

피해 규모
유엔군
공산군
총계: 1,500,000명 이상 (사망, 부상, 실종, 행방불명 포함)
총계: 1,190,000명 ~ 1,577,000명 이상.(사망, 부상, 실종, 행방불명 포함)
대한민국
군인
149,005명 전사
710,783명 부상
132,256명 실종

민간인
373,599명 사망
229,625명 부상
303,212명 행방불명

총계
522,604명 사망
940,408명 부상
435,468명 실종
총계 1,898,480명 사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군인
294,000명 전사
226,000명 부상
120,000명 실종 및 포로\

민간인
406,000명 사망
1,594,000명 부상
680,000 명 행방불명

총계
700,000명 사망
1,820,000명 부상
800,000명 실종
총계 3,320,000명 사상
미국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총계 137,250명
영국
1078명 전사
2674명 부상
179명 실종
997명 포로
총계 4908명
중화인민공화국
183,000명 전사
383,500명 부상
25,600명 실종 및 포로
총계 592,000여명 사상 및 실종&포로
프랑스
262명 전사
1008명 부상
7명 실종
12명 포로
총계 1298명
오스트레일리아
339명 전사
1216명 부상
3명 실종
26명 포로
총계 1584명
소련
315명 전사
500명 부상
총계 815명
캐나다
312명 전사
1212명 부상
1명 실종
32명 포로
총계 1557명
뉴질랜드
23명 전사
79명 부상
1명 실종
총계 103명
 
필리핀
112명 전사
229명 부상
16명 실종
41명 포로
총계 398명
터키
741명 전사
2068명 부상
163명 실종 
244명 포로
총계 3216
네덜란드
120명 전사
645명 부상
3명 포로
총계 768
벨기에
104명 전사
336명 부상
1명 포로
총계 441명
룩셈부르크
2명 전사
15명 부상
총계 17명
그리스 왕국
188명 전사
459명 부상
총계 647명
남아프리카 연방‏‎
34명 전사
9명 포로
총계 43명
콜롬비아
163명 전사
448명 부상
28명 포로
총계 639명
에티오피아 제국
121명 전사
536명 부상
총계 657명
태국
129명 전사
1139명 부상
5명 실종
총계 1273명
노르웨이
3명 전사
총계 3명
인도
1명 전사 
총계 1명

 

 

 

 

 

남북한의 군사장비 보유수

구분 한국군 북한국
지상화력 곡 사 포 : 91문 자주포 및 각종 곡사포 : 728문
대전차포 : 140문 대전차포 : 550문
박 격 포 : 960문 박격포 : 2,318문
장갑차 : 24대 장갑차 : 54대
  전차 : 242대
해 군 전투함 및 소해정 : 28척 어뢰정 : 30척
수송선 및 기타 : 43척 수송선 및 기타 : ??
공 군 연락기 및 연습기 : 22대 전투기 폭격기 및 기타 : 211대

 

한국전쟁의 일어난 이유

한국 전쟁의 첫 번째 원인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받고 일으킨 남침이며, 위의 내용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공식 기록, 소련의 비밀문서를 통해 천하에 증명되었다. 한국 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때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이 풍족하여, 중공군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외에 여러 가지 가설들이 존재하는데, 소련의 비밀문서로 그 설득력은 없다. 그러나 가설이 존재한다는 건 그 당시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가설은 차후 다시 알아보도록 하자.

 

김일성이 주장하는 북침설도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북한은 체제의 특성, 참전자 증언, 소련의 공개된 문서를 고려할 때, 이승만 북침설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의 경우, 대한민국과의 수교 이전 북한의 주장인 북침설을 공식적으로 동의하였으나, 경제개방과 대한민국과의 수교 이후에는 남침설을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중국은 1996년 7월에 한국 전쟁의 기록을 대한민국의 북침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수정하는 역사 교과서 개정을 하였다. 소련의 붕괴  이후 베일에 싸여 있던 한국 전쟁 관련 비밀문서가 공개되었고, 한국 전쟁의 원인은 남조선노동당 박헌영의 설득을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대규모의 대한민국 침입을 계획하고 스탈린의 재가를 얻어 개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재가를 무려 48번이나 거절하고 전방 위주의 게릴라전만 허용했지만 김일성의 강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어서 결국 스탈린은 남침을 승인하고 말았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스탈린이 훨씬 더 깊이 개입해 있었던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에서 나온 문건에 따르면,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미국은 대한민국을 지켜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 이후 단일 정부가 아닌 독립전쟁 과정에서 편향된 좌, 우 이념때문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독립운동가와 민족계들이 분열되어 남, 북 정권이 들어선 것을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도 당시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갈등을 위한 스탈린의 이중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전쟁을 벌인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많다. 사망자수만 보더라도 민간인이 군인보다 2배가 많다. 그리고, 이승만이 한강철교를 폭파시킴으로써 그 피해는 더 커진 부분도 있다. 전쟁은 힘 있는 자들의 싸움이기 전에 나라의 근간이 국민들의 안전이 최우선 되어야 하는데도 이승만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남쪽으로 도망간 것도 이승만이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총살을 겨눈 것도 이승만 정권이다. 

최근에 와서는 탈북자 단체에서 북한으로 보낸 대북전단(전단)으로 인해 남, 북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르고 있다. 우리처럼 우리 한반도는 아직 치고받고 싸우는 전쟁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1953년 7월 맺은 휴전협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6.25 한국전쟁 관련 동영상

 

반응형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